소와 여인
미국에서는 소 껴안기 사업이 성행한다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시간당 8만 5천원인데도 코로나가 유행하며 예약이 밀린 상태라고 합니다. 우울할 때 소를 껴안으면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강아지는 쉽게 사랑을 줍니다. 그래서 강아지를 가족처럼 사랑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간의 사랑이 치유 효과가 더 클 겁니다. 그런데 사람의 사랑은 보통 조건이 붙기 때문에 쉽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반면 강아지는 먹이를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줍니다. 심지어 소의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습니다. 단지 껴안는 것만으로 사랑을 주잖아요. 사랑을 주는 게 아니라 평소에 사랑의 에너지를 내는 건지도 모릅니다. 설사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위안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폭력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불안해 집니다. 반면 사랑이 많은 사람 옆에 있으면 편안해 집니다. 그것은 그들이 내는 에너지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물에게서 위안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에너지를 낸다는 의미겠지요.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전쟁과 폭력과 같은 거친 에너지는 파괴적입니다. 파괴된 것들을 복구하는 것은 사랑의 에너지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없었다면 이미 멸망하고 말았을 겁니다. 성현들의 말씀처럼 최고로 가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동물에게도 그런 사랑의 에너지가 있다는 겁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이 동물보다 사랑이 적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무 조건 없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랑을 동물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