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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노인 , 테라코타, 28×24×19cm














소와 노인


젖을 떼고 풀을 먹기 시작하자 주인 사람이 나를 긴 줄에 매어 끌고 갔습니다. 나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지만 인정사정 없었습니다. 엄마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주인 사람이 데려간 곳에는 수많은 소가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 틈에 끼어서 울었지만 다른 소들의 울음소리에 묻혀버렸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나는 어떤 늙은 사람에게 팔렸습니다. 


늙은 사람은 나를 끌고 가려 했습니다. 나는 가지 않으려고 버텼습니다. 이렇게 끌려가 버리면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놈 힘이 장난이 아닌데, 집에 가서 코뚜레를 해야겠어."


늙은 사람의 말에 겁이 덜컥 났습니다. 엄마의 코에 꽂혀있던 둥근 나무꼬챙이가 생각났습니다. 엄마는 그것을 아픈 고리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끄는 대로 가지 않으면 코가 찢어질 듯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순순히 따라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늙은 사람의 집은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외양간에는 할아버지 소가 매여 있었습니다. 엄마처럼 코뚜레를 하고 있었습니다.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상처 난 목덜미 주변에는 파리 떼가 앵앵거리고 있었습니다.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습니다.


 "어서 와, 이제 내 자리를 네가 대신해야겠구나."


할아버지 소는 웃으며 반겨주었습니다.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부드럽고 상냥했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소를 엄마처럼 따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서지도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소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큰 눈을 천천히 깜박일 때 늙은 사람이 코뚜레를 빼주었습니다. 할아버지 소는 곧 숨을 멈추었습니다. 할아버지 소가 끌려 나간 자리에 서서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울었습니다. 눈물이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습니다. 슬픔보다 더 아픈 것은 혼자 남겨진 외로움이었습니다.


 늙은 사람은 내 목에 밧줄을 두르고 기둥에 묶은 다음, 뾰족한 나무꼬챙이로 콧구멍 가운데를 찔러 구멍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소가 했던 코뚜레를 끼웠습니다.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생 같이 사는 거야."


늙은 사람이 피를 닦아주며 말했습니다. 왜 코뚜레를 해야 같이 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평생 같이 산다는 말이 좋았습니다.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입니다.


코뚜레는 거추장스러웠습니다. 키 큰 풀을 먹을 때 걸리적거렸습니다. 늙은 사람이 코뚜레에 맨 고삐를 잡아당기면 아파서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늙은 사람은 내가 끄는 수레를 타고 다녔습니다. 들일을 나갈 때는 항상 나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나는 쟁기나 써레를 끌고 늙은 사람은 뒤에서 고삐로 나를 조종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고삐가 당겨지는 대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삐를 통해서 늙은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같이 사는 것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늙은 사람이 고삐로 마음을 전하면 나는 그 마음을 느끼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마음 따위는 상관없었습니다. 늙은 사람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라 생각했습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도, 땡볕이 따가운 날도 고삐를 당겨주지 않으면 나는 종일 그 자리에 서서 늙은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나의 인내는 늙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었는지 모릅니다. 늙은 사람은 아침마다 신선한 풀을 베어 와서 먹이로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늙은 사람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라 여겼습니다.


 늙은 사람은 점점 더 늙어서 쇠약해져 갔습니다. 나도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에 힘이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멍에를 올린 목덜미에는 상처가 나서 파리 떼가 앵앵거리고 왼쪽 발톱은 돌을 차는 바람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수레를 끌었습니다. 고삐가 당겨지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늙은 사람은 코뚜레를 빼 주었습니다. 


"내가 살아서 이걸 빼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동안 정말 수고 했어. 다음 생에는 소로 태어나지 말거라."


늙은 사람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고삐의 뜻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과 고삐를 거역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내 운명이라 여겼습니다. 내 삶에서 '나'는 없었습니다. 나는 고삐였고 내가 사랑한 것은 고삐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어서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나는 고삐의 주인을 평생 증오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나는 지옥에서 살았을 겁니다.

  • 우리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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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10-2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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