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일의 경계
놀이는 재미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 재미있으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놀이가 아니다. 도박이나 마약 같은 것에 중독되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을 놀이라 할 수는 없다. 반면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도 놀이라 할 수는 없다.
놀이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일은 놀이가 되기 어렵다. 일에는 매우 많은 의미가 담긴다. 책임감이 따르고, 성과를 내야하고, 때로는 경쟁을 해야 하고, 내 능력 이상을 발휘하기 위해 분투하기도 한다.
농사일이 주일 때는 일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을 필요가 없었다. 일이 고되기는 했으나, 내 능력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분투할 필요도 없고, 경쟁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내 할일을 하고 나면 나머지는 하늘에 맞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르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도태되는 구조다. 그래서 일은 스트레스를 낳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많은 것을 가지고 편리해졌는데 사람들은 그 만큼 행복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일을 놀이로 만드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놀이에서 노력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력을 즐길 수 있으면 놀이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고 본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멋진 모래성을 쌓기 위해 노력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것이 일은 아니다. 노력을 하지만 즐기고 있는 것이다. 좋은 성과를 위해 노력하고, 결과물을 향한 뚜렷한 목적이 있어도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일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이나 보람 같은 것은 노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물며 경쟁 속에서도 즐거움은 있는 법이다.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면,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어도 이기고 지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이다. 그곳에는 노력을 즐기려는 정신이 있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내 능력 이상을 발휘하려 한다거나,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이 문제다. 이 사회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에 맞추려는,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려는 내 욕심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무리하지 않고, 내 페이스를 지켜내야 끝까지 달려갈 수 있다. 우리의 생활은 이미 편리함 이상을 누리고, 필요 이상을 가지고 있다. 불편함을 조금 감수하고, 가진 것을 조금 줄이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지금까지 누려온 습관을 버릴 수가 없다. 또 남들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것 같으면 도태되는 것 같다. 경쟁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과부하가 걸린, 행복하지 않은 노력으로 지구는 병들고 말았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이 한정된 공간에서 얻어내려니, 지구는 파 먹히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죽으면 인간도 살 수 없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달리고 있다. 이러다가는 결국 숨을 헐떡이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